유럽의 문장 이야기, 모리 마모루 지음, 서수지 옮김, (주)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초판, 2023년
문장? 아 문장.
한글로 문장 하면 다른 단어가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표지를 보면 바로 알게 된다.
한자나 영어로 풀어보면,
紋章: 국가나 단체 또는 집안 따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상징적인 표지(標識). 도안한 그림이나 문자로 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arms, (왕·귀족의 집안 등을 상징하는 그림)
(ET-house 능률한영사전)
이렇게 나온다. 책 초반부에 arm이 많이 나와서 헷갈렸는데 정식 단어였다. 독일 역사를 보면 수많은 상징과 표식이 나오는데 나 같은 문외한은 그냥 화려한 무늬로만 보였다. 이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식견이 넓어지길 기대하며 책을 연다.
#헤럴드
신문으로 유명한 단어. 뜻이 뭔지는 몰랐다. 하나 배운다.
헤럴드(Herald)라는 군사 겸 문장을 담당하는 관리를 각지에 파견해 중앙에서 떨어진 지방에서 위세를 떨치던 호족 등의 문장을 조사하고 등록하는 방법도 채택했다. 헤럴드는 왕 직속 관리였으나 요즘으로 치면 프리랜서에 가깝 다. 각지의 영주에게 고용되는 등 신분은 다양했지만 적대 관계에 있는 지방에서도 신변 안전을 보장받는 특수 직역이었다. 당시 여행은 너무 위험해서 일반인은 자유롭게 여행하지 못했던 시대였음에도 헤럴드는 상당히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었다. 이 신분상의 이점을 살려 헤럴드는 문장 조사 업무 분야에서 활약했다.
#플뢰르_드_리스
프랑스 왕의 문장이라 한다. 영국은 사자, 독일은 독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프랑스는 모르고 있었다. 어릴 적 본 만화에서 ‘닭’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꽃모양 같기도하고 창 모양 같기도 한 그리고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모양이 프랑스 문장이었다.
(Fleur de lis)는 백합 또는 붓꽃으로 번역되는데, 문장에 사용된 식물을 대표한다.
#에스콰이어
새로운 지식이 생겼다.
에스콰이어, 젠틀맨 모두 잉글랜드 특유의 계급으로 '신사‘라고 통틀어 일컬어지기도 하는 계급. 잉글랜드에서 문장은 귀족, 준귀족, 기사(Knight)만 사용할 수 있는데, 신사는 기사 다음 계급으로 특별히 문장 사용이 용인되었다.
#망토
평소에 궁금하던 것을 많이 배운다. 망토의 유래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동양에는 없는 등에 덮는 천조각이 서양에선 왜 이렇게 중요한 소품일까? 슈퍼맨, 배트맨 등등 각종 히어로들은 망토를 걸쳐 그의 존엄성을 높이는 데 사용한다. 그런데 그 망토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나온다.
어쨌든 망토는 처음부터 존엄과 신성의 존재에게 부여된 소품이었다. 검, 왕관, 홀, 망토가 한글로는 의미와 가치가 퇴색되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서양에서는 신성과 존엄의 상징인 것이다.
망토는 영어로는 'Mantle'인데, 문장 용어에서는 우리가 아는 망토가 아닌 다른 대상을 지칭한다. 대문장의 액세서리인 망토는 '맨틀링(Mantling)' 혹은 '람브레킨(Lambrequin)'이라 부른다. 망토는 금속성 갑주(갑옷과 투구)가 태양열로 달구어지는 상황을 방지한다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었다. 또 갑주와 닿아 그 부분이 녹스는 현상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고, 덤으로 적이 휘두르는 검이 망토에 엉켜 직격을 막아주는 방어막으로도 기능했다고 전해진다.
#모토
나는 모토가 모티브(motive)에서 나온 말인 줄 알았더니 원래 있던 한 단어 였다. 여러 가지로 배우는 게 많은 책이다.
대문장에 반드시 모토*가 필요하지는 않으나, 모토가 들어가 있을 때가 많다. 모토는 리본 모양의 두루마리(Scroll)에 모토를 적은 도형 형태가 많은데, 드물게 금속판 위에 적은 도형 형태도 있다.
글자 그대로 모토는 주의, 주장, 좌우명, 금언을 말한다.
#캔팅암스
紋章의 도형으로 사용자의 성 등이 표현된 디자인이라고 한다.
옥스포드: 황소와 여울을 건너다라는 뜻
케임브리지: 켐강의 다리
베를린: 작은곰과 발음 비슷
뮌헨: 수도사와 발음 비슷
슈튜트가르트: 암말과 발음 비슷
#변경백
한번더 짚고 넘어가자.
* 변경백(Mankgrats, 마르크그라프)은 중세 세습 귀족 중에서 다른 나라와 영토가 맞닿은 일부 봉토의 영주다. 이 영주가 다스리는 지역을 변경백국이라 부른다. 일반적인 봉건 귀족의 권리 이외에 군사권과 자치권 등의 권리가 폭넓게 인정되었다. 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 등에 존재했다. 본문에서 언급한 브란덴부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변경백이 다스리는 지역이었다.
#독후감
평소 중세시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화려한 의복도 멋지지만 각 상주나 귀족을 표시하는 문양이나 표식도 기억에 남았다. 밝은 백색, 진빨강, 진파랑, 검정색 등등 이런 색감이 세로로, 가로로, 대각으로 그어져서 멋진 깃발이나 문양이 등장하곤 했다.
이렇게 어릴적에는 그냥 이미지만 남았고 그 뒤엔 멋지다라는 기억이 남았다. 이러한 막연한 이미지를 이 책을 읽을 읽으면서 좀 더 선명하게 좀 더 이유와 사연, 규칙 등을 알게 되었다. 책을 빌리고 이틀 만에 읽었으니 나름 책의 재미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책의 구성과 설명보다는 ‘소재’가 워낙 참신하다보니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었다. 마치 아주 맛있는 귀한 음식이라기보다는 귀한 음식을 처음 먹어본 경험이랄까.
문장(紋章), coat of arms, herald, 크로스, 페일, 퍼스, 덱스트, 시니스트, 파빌리온, 솔타이어 등등 난생처음 듣는 단어들이 대부분이지만 문장의 규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결국 문장엔 그림(?)들은 자유롭게 그린 그림이 아니고 한 사람의 가계 또는 결혼한 배우자의 집안을 표시하는 일종의 한 장으로 표시한 족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서양사람들의 특유의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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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책의 후반부에서는 문장의 소개보다는 문장학 기초로 들어간 것 같아서 내용에 집중은 떨어졌다. 특히 마지막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끝난 느낌이다. 영국 왕조의 이야기와 문장의 이야기를 섞어서 하다가 그냥 책이 끝난다. 먼가 문장에 대한 끝맺음말 같은 걸 기대했는디 말이다.
어쨌든 참신한 소재의 책을 재미나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