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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브리치세계사, 예일대특별판,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박민수 옮김, 비룡소, 1판 11쇄

strand guy 2023. 1. 29. 20:22

 
#세계사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내가 끝까지 읽었던 교과서외의 유일한 책인 듯하다. 역사 배경 이야기가 있을때 다시 한번 펼쳐서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중요한 건 역시 이 책도 방대한 양을 압축해서 적다보니 한 문장 한 문장에 압축이 되어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 말은 작가의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교과서 이후로 교과서에 맘먹는 역사책이라 할 수 있겠다. 즉 가장 많은 사람들의 역사인식과 같이 하는 역사책

#기사
중세기사는 영화, 드라마, 만화와 같은 많은 창작물에 등장하는 소재이다. 어릴적 재밌게 보았던 ‘로빈후드’와 ‘원탁의 기사’가 처음 접한 기사들 아닐까 싶다. 어릴적에는 멋진 히어로의 느낌이라면 지금은 현실적인 생각이 든다. 그냥 ‘싸우는게 일인’ 사람 정도. 가장이 월요일 아침이면 일터에 나가 자기 구성원을 위해 일을 하듯, 필요한 명분이 생기면 전쟁하러 나가는 사람
그리고 기사는 사무라이랑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될 듯하다.

‘기사’란 말은 원래 ‘말 타는 사람’을 뜻했으며, 기사도라는 것도 여기서 시작되었다. 기사란 훌륭한 군마를 타고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은 걸어서 전쟁에 나가야 했으며 따라서 기사가 아니었다. (207쪽)


#인노켄티우스3세
프리드리히 2세와 황제권과 교황권을 다툰 인물, 독일파와 이탈리아파로 구분되는 인물. 나이는 35살 차이가 나지만 중세를 들여다 보는 대표적인 인물.
시오노 나나미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를 읽어보면 존왕은 실지왕이란 별명으로 소개한다. 전임 왕은 리처드 사자심(lion heart)왕이라 부른다. 존왕은 능력이 부족한 걸로 설명하였고 그래서 마그나 카르타가 작성되었다고 설명한다. 긍정적으로는 이미 13세기에 영국 정치구조의 근간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영국이나 프랑스, 일본처럼 외세의 침략을 받지않고 고유한 역사를 유지하는 나라가 부럽기만 하다. 한 개인으로서 부러운 이유는 이런 나라의 사람들이 외국과의 교류 기회가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안정감, 불확실성의 적음 등이 외국 사람의 교류가 많아지는 이유 같아서 이다.

인노켄티우스 3세는 전체 크리스트교 세계의 실질적인 수장이렀다. ••• 그의 권력은 영국에까지 미쳐서 영국왕 존이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자 존왕을 파문시키고 영국 사제들의 집전도 금지시켰다. 이 일로 분노한 영국 귀족들은 왕에게서 거의 모든 권한을 빼앗았다. 1215년 존왕은 두 번 다시 귀족들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노라고 엄숙히 맹세할 수밖에 없었다. ••• ‘마그나 카르타’ (222쪽)


#프리드리히2세
시오노 나나미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보면 두 개의 배신이 등장한다. 하나는, 간부후보생 1기 중에 배신자가 발생하여 1246년 부활절에 황제와 그의 아들 엔초를 살해하고자 한 것이다. 실행되기 전에 황제에 밀고하는 자가 있어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마지막 배신은 그와 일생을 거의 같이 한 ‘피에르 델라 비냐’로 시오노 나나미 책에서는 ’국무총리‘ 위치라고 설명했다. 곰브리치가 설명한 ’고문관‘이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처음엔 곰브리치책이 너무 비극이나 부정적으로 모는 게 아닌가 했는데 시오노 나나미의 책도 이와 비슷하게 적고 있다. 다만 아들은 ‘하인리히’를 말하는 것 같은데 둘 사이의 시간적인 차이가 크고 하인리히는 큰 타격을 주는 사건은 아니였던듯 싶다. 사도세자처럼 말이다.

바루바로사보다 더 특이하고 더 위대하며 더욱 경탄할 만한 인물은 마찬가지로 프리드리히라 불린 그의 손자였다. (221쪽)
한편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청년 프리드리히는 아주 영리한 데다 남의 마음도 끄는 사람이었다. (222쪽)
결국은 프리드리히의 아들조차 아버지에게 대항하도록 독일인을 부추겼으며 가장 충실했던 고문관도 교황의 편으로 넘어갔다. 프리드리히는 외톨이로 남았고 자신이 계획했던 현명한 정책의 대부분을 끝내 실현시키지 못했다. 점점 더 불운에 빠져 성격도 거칠어진 그는 1250년 세상을 떠났다. (226쪽)

 
#리슐리외

이렇게 해서 그(리슐리외 추기경)는 점차 모든 권력을 손에 쥐었고, 당신도 알고 있듯이 마침내 유럽의 지배권을 프랑스로 가저왔다. 리슐리외 때문에 독일 황제의 힘은 삼십 년 전쟁 동안 약화되었고 에스파냐는 영락했으며(주; 세력이나 살림이 줄어들어 보잘것없이 되다) 이탈리아는 조각조각 나뉘었다.
영국은 아직 대단한 강국으로 부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리슐리외가 세상을 뜰 무렵 유럽의 패권은 프랑스가 쥐게 되었다. (299쪽)

 
#프리드리히
18세기 프로이센의 국왕이자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경쟁자. 로코코 시대의 인물. 독일의 아버지(?). 동성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