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독일 통합의 비전을 제시한 프리드리히2세, 김장수 지음, 초판 1쇄, 푸른사상사

lt.n.se 2023. 6. 11. 22:58

동프로이센 위치




#프리드리히
참 자주 나오는 국왕이름이다. 몇 세 몇 세까지 합치면 꽤나 헷갈린다. 누가 누구의 아버지인지도 헷갈린다. 어쨌든 다시 프리드리히 2세. 지난번 인물이 13세기 십자군원정을 성공시킨 신성로마제국 황제라면 이 책의 프리드리히 2세는 18세기 프로이센 공국의 군주이다.
(신성로마제국의 이해가 조금 생기다 보니 제후국, 변경백국, 대주교국 등 그리고 나라가 되지 못한 지방영주국(?) 들이 많아서 그때마다 그 나라의 군주가 왕인지 아닌지 황제인지 아닌지 해깔린다.)
읽어보니 공통점이 많다. 자신의 철학이 담긴 성을 건설했다(카스텔 델 몬테, 상수시 궁전). 인문학적 재능이 있다(매 사냥의 서, 반마키아벨리론). 성적인 유별남(한쪽은 여성편력, 다른 한쪽은 여자에 무관심하고 동성애 성향).

군사사관학교가 설립되고 칸톤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귀족과 농민 관계, 장교와 병사 관계를 핵으로 하는 전 사회의 군사화 체제가 구축되었다. 이러한 질서 체제하에서 강조된 것은 ‘복종’이었고 여기서 ‘프로이센 정신’도 생겨났다. 명령에 복종하고,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규율을 엄격히 지키는 ‘프로이센 정신’은 향후 독일인들의 성격 형성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재위 기간)


#프리드리히 빌헬름1세 #프리드리히 2세
13세기 프리드리히 2세도 아들을 죽이는 지경까지 갔는데, 18세기에서는 거의 죽으려는 것 같다. 그 당시의 폭력에 대한 기준이 지금과는 다르겠지만 책에선 아버지 프리드리히는 엄청난 폭력과 억압을 아들과 딸에게 행사한다.
소설이었다면 작가의 상상력이 좀 가미되겠지만 이 책은 사실과 기록의 나열이라 아버지 프리드리히에 대한 생각이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대단하다.

같은 해 12월 10일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와 프리드리히 사이에 불편한 대화가 진행되었다. 여기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영국의 지원을 받는 왕실 내 혐오스러운 파벌에 대해 악의적인 발언을 했고 이에 대해 프리드리히는 "저는 영국인들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저는 영국에서 프로이센의 왕세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즉시 아들의 멱살을 잡고 지휘봉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이러한 학대는 지속되었고 심할 때는 프리드리히에게 자신의 발에 키스할 것도 요구했다.
(중략)
거기서 그는 프리드리히의 탈출 계획을 거론하고는 아들의 머리채를 끌고 연병장으로 가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심한 구타를 가했다.
(중략)
동시에 그는 주먹으로 빌헬미네의 얼굴을 가했고 그것으로 인해 그녀의 관자놀이가 크게 부어올랐다. 그러고 나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딸의 머리를 널빤지 모서리로 가격했는데 당시 궁녀 존즈펠트와 빌헬미네의 미용사가 국왕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최악의 상황도 초래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인물관계도
이 책도 역시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데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이름에 대한 기억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순간순간 헷갈리고 만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30년 전쟁 치름. 칼뱅파. 프로이센 대공국의 시초. 베를린에 왕궁이 있음.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겸 프로이센 대공.
프리드리히 3세: 주인공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다음 국왕.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1세와 긴밀한 관계 유지. 프로이센 대공국에서 왕국으로 승격. 동프로이센의 국왕이 됨. 당시 수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스스로 대관. 스스로 프리드리히 1세라 칭함. 책에서는 이때까지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이라 함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주인공 아버지. 다혈질. 키는 150센티미터 정도에 체중은 125킬로그램 정도라 함. 근검절약 정책 펼침. 책에선 이때부터 프로이센이라 함.
프리드리히 2세: 주인공
빌헬미네: 누나. 아버지로 심한 구타로 죽기를 바람. 동생과는 친밀한 관계 유지.
한스 헤르만 카테: 주인공의 탈출을 도우려던 친구. 직업 소위. 탈출이 실패하자 참수형 당함. 주인공 아버지는 동성 연인으로 생각함.
프레데르스도르프: 비밀 왕실 금고 관리직. 동성 연인이란 억측 있음.

엘리자베트-크리스티네: 와이프.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베베른 대공녀
베를린: 현재 프로이센 대공국의 왕궁이 있던 곳.
마리아 테레지아: 오스트리아 상속녀. 오스트리아의 국모로 추앙받는 사람. 책 말미에서 프리드리히와 비교한 내용이 있는데 두 사람의 성격이 상상되는 분석이었다.
프란츠 슈테판: 마리아 테레지아 남편. 부인과 사이가 좋았고 황제의 직을 얻긴 했지만 국내외 정치는 부인에게 양보했다.
카를 7세(카를 알브레히트): 마리아 테레지아 대신(?) 황제로 선출된 사람
막시밀리안 3세: 카를 7세 장자

#알가로티
프리드리히 2세는 동성연애자 였다. ㅎㅎ
책에선 인물화도 한 컷 나오는데 이전에 카테 소위까지는 단순히 우정인지 애정인지 애매하게 서술하다 알가로티 소개에서 직접적으로 동성애를 언급한다.

1740년 5월 30일 프로이센 국왕으로 즉위한 프리드리히 2세는 다음 달 2일 런던에 머물고 있던 알가로티에게 서신을 보내 베를린에서 활동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알가로티는 6월 28일 베를린에 왔고 그때부터 프로이센 군주와 그 사이의 관계는 매우 긴밀해졌고 그들의 동성애적 사랑 역시 본격화되었다.


#페르소나_논_그라테
중국대사 싱하이밍 때문에 뉴스에서 들은 단어인데 이 책에서 보게 되네. 평생 유일하게 정식으로 관계를 유지한 부인,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평생 동안 나눈 대화 사간이 한 시간은 되려나.

그러면서도 프리드리히 2세는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에게 일종의 ‘가사 상태’를 요구했던 것이다. 이후부터 엘리자베트-크리스티네는 상수시 궁전에서 페르소나 논 그라테로 간주되었다.


#로코코
이 단어도 배우네. 여러 가지 많이 배운다. ㅎㅎ

상수시 궁전은 로코코 양식을 선택했다. 로코코(rokoko)라는 단어는 로카이유(rocaille)라는 프랑스어에서 비롯되었다. 로카이유는 조약돌이나 조개 등으로 만든 장식물 혹은 인조암을 지칭한다. 따라서 로코코양식은 조약돌이나 조개껍데기를 세공하여 가구나 건축물 등을 장식하는 것이라 하겠다.


#사육제 #謝肉祭
오랜만에 듣는 단어다. 2023년 이제는 거의 고어가 된 단어 아닐까? 갑자기 찾아온 낯선 단어 때문에 사전을 찾아보았다.

프리드리히 2세는 1월부터 5월 말까지 베를린 궁전에 머물렀고 이 시기에 열리던 가면무도회 및 사육제에도 참석했다. 6월 초에는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했다


#정의? #선? #윤리도덕?
프리드리히 2세는 독일인 좋아하는 군주라고 한다. 영토를 넓히고 제목 그대로 독일민족의 비전을 제시한 게 맞는 것 같다. 프로이센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를 유럽사회에 처음으로 각인시킨 인물이라 봐야 할 것이다. 쉽고 단순하게 말하면 프로이센의 아버지 또는 독일민족의 국부 정도로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서 사적인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어서 인간적인 모습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역사상 영웅에 대해 착한 사람 이미지를 많이 불어넣는다. 이순신장군은 끝까지 충성스러웠고 어머니에 대해선 효도를 다했다. 욕심이 있어 보이거나 이중적인 모습은 없다. 특히 성적인 문제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런데 지금 이 인물은 어떤가?
프리드리히 2세는 요약해 보면 동성애자이고 와이프에겐 평생을 무관심하게 대했다. 평생 와이프를 몇 번 만났고 대화를 했을까, 그냥 독신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왕이 돼서는 책의 표현을 빌리면…

… 즉흥적인 결정들은 규칙성, 지속성, 그리고 법률적인 시스템을 지향하던 관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리고 옆 나라(오스트리아)가 왕위계승을 누가 할지 때문에 어수선한 상황이 되자 제일 먼저 하이에나가 되어 슐레지엔을 무단점령해 버리는 기회주의자이다. 이렇게만 적어보면 욕심 많고 이중적이며 음흉한 사람이다.

위키에서 나온 슐레지엔



#벌써_이유가_나왔다
우리나라 역사에는 이런 인물이 없어서 공감이 안되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을 1차, 2차를 성공하며 자국 내 신민들에게 ‘대왕’ 칭호를 받는다.

프리드리히 2세가 양 전투의 승자로서 1748년 12월 28일 베를린으로 귀환했을 때 프로이센의 신민들은 그를 향해 “대왕()’이라고 외쳤다. 실제로 베를린의 주요 거리에 모인 사람들의 입에서 또는 현수막에서 확인되는 문구는 ‘프리드리히 대왕 만세(der Große)’이었다. 그리고 한 초등학교 합창단은 ‘만세, 만세, 프리드리히 국왕, 승리자, 숭고한 인물, 위대하고, 행복하고, 조국의 아버지!(Vivat, vivat, Fredericus Rex, Victor, Augustus, Magnus, Felix, pater Patrie!)’라는 합창곡을 힘차게 불렀다.

(중략)

실제로 당시 유럽 대륙의 질서 체제를 주도하던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는 독일권의 무력화에 동의했고 그 실천에도 적극적이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브레슬라우 예비평화회담이 체결된 이후 "이제 독일권은 참된 미래를 향한 획기적인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프로이센 주도로 시작된 이러한 시도에서 외부적 영향을 받던 많은 독일인은 이제 독자성을 찾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부 독일에서 힘의 장(Kraftfeld)도 구축하게 되었다"라는 의미심장한 언급도 했다.


#의용군 #의병?
그러게, 스스로 뜻이 있어 일어난 의용군은 군인의 신분을 인정받을 수 있고 전과가 있으면 전쟁이 끝났을 때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 끝이 보이지 않고 늦어지면 정규군이 아닌 의용군은 어떻게 생활을 했을까? 산적과 차이가 있었을까? 전략 전술도 없고 정상적인 물류의 보급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문제는 전쟁이 장기간 지속되면 이러한 만행이 더욱 광범위하게 자행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다수 국가에서 운용하던 의용군(freikorp)의 만행은 정규군의 그것보다 더욱 심각했다. 의용군은 정규군과 별개로 지원 방식으로 모집되고 반자율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정상적인 병참 보급도 받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은 오로지 강탈과 전리품 습득으로 필요한 물자를 확보해야만 했다. 이러한 부대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러시아 카자크(Kosaken) 부대와 빨간 외투를 착용한 오스트리아의 판두르(Pandur)가 있었고 프랑스군 역시 그런 부대를 운영했다.


#표트르3세
3차 왕위계승전쟁을 읽다 보니 프리드리히 2세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점이 약간은 이해가 되었다. 일단 그는 전쟁을 시작한 이후 전쟁터에서 계속 지내고 있다. 그리고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고 패전하며 유럽 내에서 그의 이야기가 더욱 퍼져나간 것 같다.
그래서 표트르 3세 같은 팬(?)이 나온 것 같고 그런 팬이 있어서 절재절명의 시기에 은인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그 운을 프리드리히에게 주어서일까? 표트르 3세는 부인인 예카트리나 2세에게 권력을 뺏기고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ㅎㅎ
프리드리히 2세, 마리아 테레지아, 루이15세, 조지2세, 표트르3세, 예카트리나2세 등등. 유치할 수도 있지만 삼국지처럼 만화로 나와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당시 표트르 3세는 프리드리히 2세를 세계의 영웅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영웅이라 칭송했다. 그는 프로이센 중장의 군복을 자주 착용했고 거실 여러 곳에 프리드리히 2세의 초상화를 걸어놓기도 했다. 또한 프리드리히 2세가 포츠담에서 그에게 선물한 반지에 각인된 프리드리히 2세의 얼굴에 키스하기도 했다.


#바이에른상속전쟁
책을 읽으면서 18세기 유럽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젊은 프리드리히2세 이야기는 자극적인 내용이 종종 나와서 집중력을 읽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부자 갈등, 동성애, 무의미한 부부 관계 등 18세기 유럽의 느낌을 살짝은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 보았던 유럽 왕실을 배경으로 한 만화나 영화를 보는 느낌이 났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프로이센 군주가 되어서는 거의 평생을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치른다. 한편으론 프리드리히 2세는 여자에 대한 차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와이프도 있지만 평생을 독신처럼, 사적으론 동성애를 즐겼으니 드는 생각이다. 그리고 마리아 테레지아라는 걸출한 실질적인 여제와 끝까지 전쟁을 치른다. 상황이 영웅을 만든다고 프리드리히2세 같은 영웅이 나오니 그와 대등하게 마리아 테레지아 같은 여제도 나온 것 같다.
영국과 프랑스가 해외 식민지에 정신이 팔린 사이 유럽 내륙에선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 간에 상속 문제로 여념 없이 전쟁을 치른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간 힘겨루기 시기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이러고 나서 뒤늦게 프로이센이 독일 제국을 19세기에 완성하고 영국과 프랑스에게 나워먹자(?) 또는 우리가 모가 모자르냐(?)라고 외치는 시기가 20세기가 되는 것 같다.
프리드리히 2세는 생전 마지막 전쟁에서 여제의 아들도 무릎 꿇게 한다. 오스트리아의 명운은 이때가 끝인가 보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신의 요구와 충고에 부정적인 요제프 2세에게 개인적 서신을 많이 보냈다. 때로는 하루에도 여러 번 편지를 보내어 마음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6월 말 자신의 충고가 더는 실효를 거둘 수 없음을 판단한 마리아 테레지아는 전쟁 이후의 상황을 고민하게 되었다.
실제로 전쟁을 개시한 지 3일 만에 프리드리히 2세는 보헤미아 지방을 정복하는 민첩성을 보였지만 요제프 2세는 그러한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요제프 2세가 전쟁이론을 배웠지만, 그것을 실제 상황에 적용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요제프 2세는 국민 총동원령을 내렸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재원을 전쟁에 투입하려는 무리한 정책을 강행했다. 그러나 요제프 2세의 오스트리아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덧
책에서 저자에 대한 소개가 없어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