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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독일사, 제임스 호즈 지음, 박상진 옮김, 진성북스, 1판, 2023년

strand guy 2024. 4. 7. 16:34


#독일의_시작

동프랑크 왕국 이후 '독일'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나라가 세워진 것은 911년 동프랑크의 다섯 게르만 부족인 프랑켄, 슈바벤, 바이에른, 작센, 로트링겐이 모여 독일 왕국의 왕을 선출한 순간이다.


#책느낌
이 책은 독일 역사를 제목 그대로 짧게 옮긴 책이다 보니 주관적인 생각으로 요약, 정리가 많다.
그리고 원문 자체가 그런지 모르겠지만 술술 읽히지 않는다. 문장이 한국식이 아니란 느낌이 많이 든다.
어쨌든 독일 역사에서 “마르틴 루터”는 항상 거론되는 인물이다. 독일이란 역사를 어디서부터 규정짓기가 어려울 텐데 그래도 방점을 찍는다면 "종교개혁"과 "프로이센"일 듯하다.
이 책에선 다행히 프로이센의 기원을 천천히 설명해 주어 그 부분은 좋았다.
그리고 항상 느꼈지만 모든 역사서적은 지리와 함께 설명이 되야 한다고 느꼈는데 이 책은 그 부분이 잘 되어 있다.
처음 독일 역사를 접했을 때 라인강이 어떻게 생겼고 도나우강은 어디고 엘베강은 어딘지 몰랐는데 이 책은 그림으로 친절히 설명이 되어 있다.
어쨌든 루터는…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은 단지 기독교 역사뿐 아니라 근대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총체적 변화를 일으키는 촉발제가 됐다.
즉, 루터의 종교개혁은 중세의 봉건적 잔재를 떨어내고 근세를 구분 짓는 하나의 이정표로서, 또 근대 자본주의의 기반이 되는 사상적 바탕을 제공했다.


#프리드리히 2세
역시 함축과 비유가 많은 책이다.

이 세 가지 유산의 조합은 유럽에서 가장 효율적인 군대를 지휘하면서도 명백히 사이코패스경향을 가진 한 남자를 조각했다. 그의 조카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재위: 1786-1797)는 큰아버지를 '신의 분노로 지옥이 뱉어낸 하나님의 재앙'이라고 묘사했다.


#폰 #von
드디어 중간 이름 폰(von)의 의미를 알게 된 건가?

프로이센군의 뿌리는 프리드리히 2세의 아버지 빌헬름 1세와 융커 가의 한 거래에서 기원한다. 당시 융커 지위에 있던 이들은 대부분의 서유럽 귀족들보다 훨씬 가난했다. 그들의 소유권은 모든 자손과 자손들의 남자 자손들에게 상속되었지만, 많은 헐벗은 가문의 영지는 그중 한 아들에게만 신탁됐기 때문이다. 법은 융커의 재산이 비융커에게 판매되는 것을 금지했지만, 이는 또한 나아지기 위한 수탁권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결과 군사 교육과 반식민지적 규정들을 교육받은, 가난하지만 자만심 가득한 수많은 청년들이 탄생했다. 심지어 모두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의미의 폰 von이라는 귀한 작위를 가지고 있었다. 프로이센의 폰 작위를 가진 이들은 부와 지위에 큰 차이가 있어도 여전히 하나의 고귀한 공동체로 여기며, 작위를 잃는 것보다 죽음을 선택했다.
이 청년들은 나중에 훌륭한 장교가 됐다. 그들은 왕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폰을 배타적 특권 계급으로 인정받는 한, 프로이센 군주제를 위해 포화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갔고, 부하들 또한 그렇게 이끌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거래에서 자신이 약속한 바를 지켰다. 국가 소유 영지는 농노제를 폐지했지만, 융커들의 영지에는 계속 유지하도록 허용했다. 자신의 통치 기간 내내 제대로 된 혈통을 가진 귀족들만 군대에서 장교가 될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세밀하게 신경 썼다. 프리드리히의 프로이센을 독특하게 만든 것은 바로 왕과 융커들 사이의 이런 독특한 거래였다.


#두갈래로가는독일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비스마르크 이후의 독일 상황.
독일에 대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여기도 마찬가지로 두 세력의 팽팽한 대립의 역사였다.

빌헬름의 개인적 정권은 흔들리고 있었다. 비스마르크식 민족주의자를 현대화함으로써 정치적 우파에 압도당했고, 자신이 동성애자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혐의로 공개 비난받았다. 붉은 혁명을 두려워한 그였기에 점점 더 프로이센적이고 군국주의적인 방향을 추구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
모든 것이 한계에 다다랐다. 이 시대의 독일 문학의 색채는, 해방을 향한 광적인 갈망과 임박한 재앙에 대한 기시감으로 팽팽한 긴장감과 오싹함, 전율로 가득 차 있었다.

(중략)

몰트케가 반복해서 말했던 주문이 마지막으로 기록된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1914년 6월 1일이었다.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소식이 전해졌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후계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하다.' 1914년 7월 5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작전 참모들에게 그들이 1879년부터 기다려온 전쟁 백지수표를 전했다. 슬라브 문제 해결을 위한 그들의 모든 선택에 대한 프로이센의 완전한 군사 지원이었다.


융커들은 러시아를 두려워하고 견제하려고 했다. 전쟁 중에도 동부전선에 유독 신경을 썼다.
그게 패인이라고 책은 전한다.
그러면 2차 대전은 어떻게 설명하나 하면, 1차 대전에서 프로이센-독일이 망한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전쟁배상금으로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던 수많은 중산층은 불만이 팽배했다.

뮌헨에서는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라는 이름의 전 상병이 처음에는 좌익의 전 동료들을 선동하기 위한 비밀 군사 자금을 받고 있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새로운 정부에게 배반당했다고 믿는 사람들의 감정을 대신 표출하는 데 특별한 재능이 있음을 깨닫는다.


역시 시대의 영웅은 그 시대의 민중의 분노와 관심을 읽고 표출을 선동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에곤 프리델의 "근대문화사 2"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로만 민족의 경우 위대한 인물은 그 민족의 압축된 표현이자 정수가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히틀러를 악인, 악마로 묘사하기보단 그 시대의 상황과 그의 공과를 균형 있게 사실적으로 다루는 게 맞을 것이다.

#독일_유럽의미래 #동부엘비아_회귀하다
멋진 말이다.
한동안 가슴속에 새겨놓고 다녀도 될 것 같다.
“인생은 너무 늦은 자를 벌한다”
“Life punishes those who come too late”
인생은 타이밍!
한국은 “다, 때가 있다”라고 말한다.
내가 사는 지금도, 나의 모습도 늦지 않게 노력하고 있길…
.
어쨌든 독일의 역사에서 “동부 엘비아”는 “융커”와 함께 끊임없이 나오는 단어이다.
결국 엘베강 동족 사람들, 귀족들. 프로이센이 역사적으로 지워졌지만 [프로이센=융커=동부 엘비아=호전적=군국주의=국가숭배자=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프로이센
결론은 프로이센.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독일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 근면, 국가숭배 이미지를 만들어낸 프로이센.
길지만 한 단락을 그대로 옮겨본다.

서기 100년 이래 남서 독일은 서유럽에 속해 있었다. 1525년에서야 새롭고 본질적으로 비서구적인 독일이 등장했다. 바로 프로이센이다. 서부 독일은 그동안 타고난 전쟁광들(혹은 고유한 국가숭배자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연합할 수 없었다. 점점 더 그들의 땅은 더 강한 이웃들의 전쟁터와 잠재적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1844년, 단순한 러시아의 고객이었던 프로이센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격으로 육중하고 단단해졌다. 마치 오늘날의 트럼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유럽이 서로 경쟁하는 혼란 상태로 남아 있길 명확히 원했던 영국은, 라인 Rhine에 현대 산업 시설을 선물했다. 1866년 남/서 독일은 전쟁에서 패배했고 곧 숙명적으로 근육을 단련한 프로이센에 병합됐다. 프로이센은 대부분의 유럽 이웃 나라들의 일반적인 표준(역사, 지리, 정치 구조, 종교)에서 완전한 타국이었다. 이것은 거대한 변형 Deformation (어떤 것의 일반적이고 진정한 형태를 망치는 행동이나 미술, 데포르마시옹)이었다. 그 후로 남/서 독일의 모든 부, 산업, 인력은 프로이센의 탐욕스러운 위장으로 들어갔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만약 가능할 경우) 러시아와 연합하거나, 전쟁을 감행하고서라도 폴란드, 발트 반도, 북중 유럽에 대한 패권을 쟁취하는 것 말이다. 이 천년의 투쟁은 1945년에 피투성이가 된 프로이센의 멸망으로 끝났다. 서부 독일은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1949년 마침내 진정한 정치적 실체가 됐다.


결국 끝맺음은 프로이센이다.
그리고 가정법을 통한 경고문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나 실제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발트 반도의 사람들과 달리, 두 정치적 극단의 동부 엘비아 독일인들은 모스크바를 워싱턴이나 파리보다 더 자연스러운 파트너, 더 가까운 영혼의 형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므로 다시 말해야 한다면, 이는 독일 역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생각이며, 모든 것은 프로이센 역사와 관련이 깊다. 만약 동부 엘비아에 지지층을 가진 정당들이 그들의 땅이 특별한 경우라는 것을 근거로 (또다시) 모든 독일 정치를 변형시킬 수 있다면 그 결과는 대단히 심각할 것이며, 그 문제는 단지 독일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총평
재밌게 읽었다.
문체가 이해하기 어려워서 두세 번 읽는 어려움이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명확한 주제가 드러나서 이해하는 수월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십여 권의 독일 책을 읽었지만 프로이센에 대해서 명확한 시선으로 설명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또한 라인강, 도나우강(책에선 비중이 없다), 엘베강(책에서 가장 비중이 큰), 오데르강(도나우 보다는 비중 있는)이 그림으로 쉽게 정리되어 있어 이해가 수월했다. 역시 역사책은 지도가 겸해져야 이해가 쉽다. 한동안 독일 책을 읽으며 지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이 책에선 강 위주로 설명이 되어 좋았다.
시작 보다 끝으로 갈수록 재미있는 책!!


#융커 #나치 #만남
갑자기 머릿속에서 생각나서 한참을 찾았다. 19세기 융커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20세기 나치의 이야기였다.

1871년과 1918년 사이에 프로이센은 전 독일에 자신들의 뛰어난 특성을 부여하려 했다. 군사화된 사회, 국가 숭배, 좀비와 같은 무조건적 복종 그러나 흉터 있는 얼굴의 무장한 젊은 융커들이 제복을 입고 으스대며(실제로는 위법 행위를 일삼으며) 해결할 문제들을 찾던 이러한 노력은 거의 성공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1934년 이후의 나치 정부는 그것을 훨씬 더 잘 해냈다.
스스로 새로운 엘리트 종족이라 여겼던 이들은 의도적으로 융커들을 모방했다. 거만함, 짤막한 연병장식 말투, 만약 거슬릴 경우 개인적 폭력을 사용하는 유희 등. 사람들은 나치 친위대가 세운 생도 훈련장을 SS 융커 사관학교라고 불렀다. 그곳에서 사용되는 교과서 중 하나는, 나이프와 포크는 손 전체가 아니라 손가락만으로 잡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시도는 사회적 급진주의였다. 그래서 아리안 증명서 Aryan Certificate(여권)는 가계도를 귀족 혈통으로 대체하는 출세의 수단이었다. 오래된 작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가족 중에 유대인이 있으면 곤경에 처했다. 반면, 닭을 키우는 농부나 은행 서기라 해도 적절한 독일 혈통에 당원증만 가지고 있다면 융커가 늘 하던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초대받았다. 말 근처에 가본 적이 없던 나치 친위대 고관 들은 옛 기병 연대의 승마용 바지를 흉내 냈다. 그들의 (종종 휴고 보스가 자랑스럽게 맞춤 제작하는) 검은 제복과 모자에 단 두개골 모양 장식은 제1 제국 후사르 근위병(나폴레옹의 독특 한 경기병) 연대에서 전용으로 사용했던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