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지금, 비스마르크 전환의 시대 리더의 발견, 에버하르트 콜브 지음, 김희상 옮김, 메디치미디어, 초판 1쇄, 2021년

lt.n.se 2023. 8. 11. 23:45


#비스마르크
철혈재상이란 닉네임으로 유명한 인물. 19세기 후반 독일 통일의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인물. 프리드리히 2세가 13세기를 알 수 있었고, 또 다른 프리드리히 2세와 마리아 테레지아로부터 18세기를 알게 해 주었다면 비스마르크는 19세기를 알아보는 시간이다. 그가 프로이센 왕국의 보수, 우파를 대변하는 인물인데 그 당시 프로이센의 보수, 우파는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서 책을 읽어본다.

#독일통일
19세기 초 독일어를 사용하는 (이때가 참 애매하다. 나라라고 해야 하는지 국가라고 해야 하는지 아님 공국이라 해야 하는지) 나라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살짝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 여론이 계속해서 관심을 가진 핵심 안건은 독일통일 문제이다. ‘파울스키르헤’의 실패 이후 프로이센 권력층이 독일 정치의 목표로 삼았던 것은 합스부르크 왕조가 없는 독일연방 국가의 창설이었기 때문이다.


#집요함 #섬세함
가끔 인물평을 할 때 작가가 간단 명료하게 인물의 성격을 집약해서 표현하곤 한다. 이 번 책에서는 작가가 비스마르크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크림전쟁에 참전여부를 결정짓는 의회 투표에서 비스마르크의 의도대로 부결시키면서 작가가 표현한 비스마르크의 특징이다.
결론적으로 현재는 오스트리아는 쪼꼬미가 되었고 독일은 대국이 되었다. 오스트리아 입장에서는 독일을 싫어할까?

오스트리아가 연방의회에서 러시아에 대적할 연방군에 합세해 달라는 안건을 상정하자, 프로이센 대표 비스마르크는 행동에 나섰다. 그는 불굴의 집요함과 섬세한 수완으로 1855년 1월 과반수로 오스트리아가 상정한 안건을 부결시켰다.


#페로_에트_이그니
19세기 중후반 프로이센도 나름 생존의 치열한 경쟁을 펼친 것이 느껴진다. 우리 조선이 급변하는 정세에서 치열하게 움직이듯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짧은 대목이 나온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겪은 경험의 핵심을 비스마르크는 1859년 5월 12일 외무 장관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 문장은 자주 인용될 정도로 유명하다. ‘연방의 구도에서 제가 본 것은 프로이센의 병약함입니다. 우리가 제때 유리한 계절에 이런 병약함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우리는 ‘페로 에트 이그니(ferro et igni, 불로 담금질되는 쇠)’처럼 시련을 겪어야만 강건해질 겁니다.’

두 단어만 바꾸면 재밌어 진다.
"동양의 구도에서 제가 본 것은 조선의 병약함입니다. 우리가 제때 유리한 계절에 이런 병약함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우리는 불로 담금질 되는 쇠처럼 시련을 겪어야만 강건해질 겁니다."
19세기 후반, 우리 조선엔 비스마르크 같은 인물이 없었고 그래서 시련을 겪고 현재와 같은 강건을 얻었나 보다.

#보오전쟁 #1866년 #독오전쟁
중앙 유럽에서 오스트리아는 참 중요한 나라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역할과 활동은 유럽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인 건 확실하다.
어쨌든 덴마크와의 전쟁에서는 동맹을 맺었지만 곧 다시 둘 사이의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의 과정과 결과를 함축해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다음 7월 3일 쾨니히그라츠(흐라데츠크랄로베, 현재 체코, 프라하 동쪽)의 전투는 몰트케의 천재적인 전술과 오스트리아 전장총보다 우월한 성능의 프로이센 격침발사총 덕분에 프로이센 군의 압승으로 끝났다. 오스트리아 군대는 괴멸 수준으로 패배했다.

여기서 주목해 볼 만한 부분은, 천재적인 전술을 펼친 군인과 기술적으로 우수한 총기술이다. 역시 사람과 과학기술이 나라 간 국가 간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요인이다. 나라뿐만 아니라 개인도 재능과 환경이 뒷빋침되면 어떤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으리라…
더불어 전장총과 격침발사총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아쉽게도 “격침발사총”이란 단어는 없는 단어인 것 같다. 오히려 설명은 길어도 “프로이센이 만든 후장식 소총”이란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 참조

프로이센이 만든 후장식 소총, 드라이제


#보불전쟁 #프로이센과프랑스전쟁 #1870년
스페인 왕위(여기서도 헷갈리는 게 스페인의 군주는 왕인가, 황제인가, 이런 고민이 들 때는 차라리 차르나 카이저처럼 원어 그대로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 계승 문제로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가 관여하며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진 프랑스가 결국 선전포고를 한 것이 보불 전쟁이다. 보불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이기면서 독일 민족의 진정한 통일을 이루게 된다.
보오 전쟁으로 마인강 이북의 북부 독일만 통일을 이루었다면 보불 전쟁으로 마인강 이남의 바이에른 외 연방국들이 합류하여 진정한 독일민족의 독일 제국을 이루게 된다.
한 사람의 역할이 너무 컸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몰트케, 론과 같이 팔라딘이라 불리며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워낸 성과는 아니지만 제국의 수상으로 참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한편으로 카이저 빌헬름 1세의 황후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내용을 읽으면 조선말 대원군이 생각이 났다. 역사적인 시기도 비슷하고 혼란스러운 정세에서 재상과 같은 역할을 했던 대원군, 만약 대원군의 정치가 끝까지 성공했다면 2023년의 한반도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아님 20세기 초 조선은 어떠했을까?
어쨌든 보불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은 프랑스가 다시 일어서는 것을 막고자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삼제동맹을 맺고 왕정복고를 방해했다. 결국 이런 흐름이 세계대전으로 넘어가는 기승전결의 기가 되는 것 같다.

1년 뒤 론은 이런 편지를 받았다. “나는 점차 황실의 모든 구성원에게 미움을 받는 모양이네. 카이저가 나를 대하는 신뢰는 줄어들고 있어. 카이저는 나를 향한 모든 음모에 귀를 여는군.”
특히 비스마르크를 노린 쪽은 황후 아우구스타였다. 1848년 혁명 이후 그녀는 비스마르크의 그야말로 철천지원수였다.


#1890년 #라인강의파수꾼
카이저 빌헬름 2세와의 의견충돌에서 70대의 노인은 권력을 내려놓게 된다. 작가는 스스로 물러날 시점을 놓친 것을 아쉬워하는 문장을 담았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권력자가 마무리까지 아름답게 한 경우는 없다. 세습직으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절대 군주라면 모를까 말이다.
은퇴할 때까지 비스마르크의 활동을 읽어 본 결과 독일 통합, 독일 탄생의 주역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전쟁은 최대한 피하면서 언제가 일어날 전쟁에 대비한다.
국내에 정적은 많지만 대외적으로는 적이 아닌 친구를 많이 만든다. (이 부분은 삼성 이재용이 한 말과 맥락이 같다. 한국적으로 알기 쉽게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사이에서 전쟁이 나지 않도록 증재자 역할을 잘했고 실제로 전쟁은 없었다.
이렇게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은퇴 후 20여 년 뒤에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어쨌든 독일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이다. 책을 읽으면서 발칸반도의 분위기를 살짝 알게 되었고 오스트리아, 러시아, 튀르크의 분위기도 ‘국밥 첫 술의 한 국물’ 정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파수꾼”이란 단어의 유래는 어떻게 될까? 처음 알게 된 것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웃긴 건 ‘호’는 오랑캐의 뜻을 가진 한자이고 ‘밀밭’은 순우리말이다.  파수꾼은 한자어인데 영어로는 catcher이다. 야구에서 흔히 말하는 포수, 아마 소설에선 ‘지킴이’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호밀까진 그렇다 치고 “파수꾼”이란 단어는 어떻게 사용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검색해 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수천 명의 군중은 독일 국가와 “라인강의 파수꾼‘을 한 목소리로 부르며 프리드리히스루를 향해 출발하는 열차를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