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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독일사, 안병억 지음, 페이퍼로드, 2024년 초판

strand guy 2025. 8. 27. 00:21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와 7년 전쟁. 그리고 그 여파로 미국독립과 프랑스혁명. 이처럼 역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역사는 종종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7년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막대한 전비를 지출하는 바람에 식민지였던 북아메리카에 인지세와 타운센드 등의 새로운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식민지가 반발하면서 미국은 독립했다. 프랑스는 미국 독립전쟁에 대군을 파견해 식민지 승리에 큰 도움을 줬다. 그러나 해외에 군을 파견해 왕실 재정이 파탄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삼부회를 소집했고 이게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7년 전쟁-미국의 독립-프랑스 혁명’이 이처럼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긴밀하게 연계된다.


#한동안 폰(von)이 몬가 무척 궁금했는데 책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책은 또 괴테를 출세의 길로 안내했다. 책이 출간된 이듬해 1775년 그는 바이마르 공국의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Herzog Karl August, 1757~1828의 초청을 받아 그곳으로 가게 된다. 시민계급 출신이었던 괴테는 이 궁에서 일하며 1782년에 귀족 칭호를 받는다. 이때부터 괴테는 성 앞에 귀족임을 드러내는 전치사 폰 von을 쓰게 된다.


#우리는 일본에게 무엇을 사과받아야 하나?

피셔 테제를 반박하는 많은 역사가는 당시 독일만이 팽창주의 정책을 실시한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회적 다윈주의에 따라 강대국이 약소국을 정복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 시대였고 특히 발칸반도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해 온 분쟁지역이었다.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 그 영웅은 그 시대 민중의 지표이다.

대공황 전인 1928년 7%에 불과했던 실업률이 1930년에는 16%, 1932년에는 30.8%로 증가했다. 노동인구의 1/3이 실업자로 전락했다. 무려 600만 명 정도가 일자리가 없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힘겨워했다. 세계 최고의 실업률이었다. 그해 산업생산량은 1928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주가는 1/3로 급락했다. 이처럼 경제가 휘청거리고 거리에 실업자가 넘칠수록 나치의 지지도는 수직 상승했다.


#다 읽고 나서…
독일 역사는 한국과 비슷한 점이 있다.
강대국 사이에 끼여서 제대로 기를 펴질 못했다.
그래서 역사를 읽어보면 불쌍하단 연민의 감정이 든다.
유럽의 역사가 다 그럴 수 있겠지만 독일이 독일이란 정체성으로 국가를 이룬 다음부터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소련)의 견제를 받았다.
물론 역사는 승자의 역사이니 독일은 할 말이 없다.
한편으로 한국은 세계사 속에서 치열했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조용하게 지냈다.
일제의 식민지 상태이긴 하지만 안정적으로 근대화를 이룬 것도 사실이다.
독립을 이룬 것이 미국처럼 이룬 것은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볼 때 한국은 현재 강대국과 같은 양탄자 위에 서 있다.

1949년 9월 21일 오전, 신생국 서독의 총리로 취임한 지 6일이 지나서 아데나워는 서방 3개국의 본부가 있는 본 교외의 페티스베르크를 찾았다. 미국의 존 머클로이John Mcloy를 비롯한 세 명의 군정청장은 총리와 각료들을 환영하며 화려한 양탄자 위에 서 있었다. 아데나워와 장관들은 양탄자를 밟지 말고 밑에 서서 발언하라는 의전에도 불구하고, 신임 총리는 곧바로 양탄자를 밟고 서서 준비된 원고를 읽었다. 이후 그는 이 일화를 자주 언급하며 '독일도 강대국이 앉는 양탄자 위에 다시 앉도록 하는 것'을 외교정책의 목표로 삼았음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