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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편역

lt.n.se 2023. 11. 9. 16:16

 

 
 
#책서문을읽고
오래간만에 철학책을 읽는다. 왠지 기대되고 속으로는 비장함이 느껴진다. 한 편의 책을 읽으며 정신적인 심호흡을 깊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딱딱하게 굳어버린 영혼에 따뜻한 손길로 마사지를 해줄 것 같은 느낌이다.
날이 추워지는 겨울 초입, 늦잠 잔 주말 아침 따뜻한 라떼 한잔이 입안에 고소함을 전해주고, 따뜻한 음료는 내 몸에 살포시 온기를 전해준다. 책도 이럴 것 같은 느낌으로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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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원서의 지명, 세부내용 등을 한국의 실정에 맞게 역자가 뜯어고치면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실용서가 그렇게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번안도 일종의 편역이라 할 수 있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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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주의(厭世主義)는 비관주의(悲觀主義) 또는 페시미즘(pessimism)이라고도 하며, 세계는 원래 불합리하여 비애로 가득 찬 곳으로써 행복이나 희열도 덧없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출처: 위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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厭 : 싫어할 염, 누를 엽, 빠질 암, 젖을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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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리즘: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1부
책에 들어가 보니 메모형식의 내용을 모아서 만든 책이다(아포리즘의 뜻은 나중에 찾아보고 알았다.) 읽는 부담 없고 한 메모마다 주옥같은 문구만 마음에 담아 가면 될 것 같다.

나는 늘 같은 시간에 산책하려고 노력한다. 산책은 직장과 마찬가지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발해 같은 시간에 끝마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산책할 때는 생각할 것들을 챙겨간다. 어려운 과제를 가져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행을 두지 않는다. 산책의 동료는 고뇌로 족하다.
천지간의 흥망은 시간의 장난질을 감당하지 못한다. 영웅도, 국가도 시간 앞에 무력하다. 세월은 모든 것을 녹이는 거대한 용광로처럼 우리의 삶을 조금씩 녹여 이름 없는 대지에 부어버린다.
판단을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타인의 의사를 수용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 정신의 정점이다. 자기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만큼 개체로서 완성도와 독립성을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행복을 손에 넣고 싶다면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어떤 목표를 향해 의지의 실천을 했을 때 길의 중간에서 우연찮게 얻은 물 한 모금 같은 것이다.


#2부
…에서는 1부에 있던 내용을 좀 더 보충해서 설명하는 느낌이다. 같은 주제의 내용이 다시 나오기 때문이다.

사랑의 표현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고통이다. 사랑은 그 고통을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다 지쳐 거리를 헤매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황무지 같은 들판을 찾아가 자학하듯 울음을 터뜨리고, 스스로 양심을 무너뜨리고, 또다시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픔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사랑은 고통과 기다림에 대한 인내다. 고통을 치르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내가 나를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래서 이 밤이 부끄럽다.


#3부
책의 중반을 넘었다. 역시나 한 문장 한 문장이 명언집에 나올 법하게 비유가 넘치는 문장이 많다. 곱씹어 보고 생각해보고 하기 때문에 책 읽는 속도가 그리 빠르진 않다.
복잡한 나의 감정과 고민을 한 가지씩 풀어주는 느낌이다.

논리는 단순해질수록 강력해지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수록 죽음과 가까워진다. 죽음이 인간의 가장 행복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4부
…는 왠지 사회주의 냄새가 많이 나는 글들이 많다. 계급, 지주, 착취, 노동 등등. 인간에 대한 주제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주제로 넘어간 것 같다. 이런 내용은 좀 불편하다.
개중 마음에 드는 것들만 좀 옮겨놓는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성격과 성질이 있다. 성격은 타고난 것으로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고, 성질은 한평생 변해가는 유동적인 소질이다. 현재는 성격보다는 성질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책을 읽으며 무언가 하나는 기억에 남기자는 생각에 감동을 받으려고 열심히 책장을 뒤척인다. 그렇지만 무릎을 탁 치며, ‘아 그렇구나’라고 할만한 내용은 아직 못 찾았다. 노래를 들으면 눈물을 적시곤 하는데 책을 읽으며 그런 경험을 하게 될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랑’의 정의리라. 책에선 사랑을 고통과 기다림의 인내라고 한다. 한국에 100세 철학가 김형석 교수의 “인생문답”에서는 사랑은 용서와 공존의 질서라고 정의했다. 한 사람은 19세기 독일 프로이센의 철학가이고 다른 사람은 20세기와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철학가이다. 사랑을 정의하는 방식도 독일과 한국은 차이가 있다. 기다림의 인내란 개인의 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공존의 질서라면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유현준 교수의 “공간이 만든 공간”을 생각해 보면 서양은 절대자를 중심으로 한 수학적 규칙이라면 동양은 바둑과 같이 사이사이의 관계 중심이란 설명이 기억난다.
사랑이란 단어를 생각하며 쇼펜하우어는 유럽 마을의 듬성듬성 놓인 집 한 채들처럼 고독한 것처럼 표현했고, 김형석은 우리나라 시골마을에 옹기종기 모인 마을처럼 표현했다(이것도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결국 사랑하는 방법도 서양은 고통을 참고 기다리는 것으로 한국은 용서하고 질서 있게 같이 사는 것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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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가 일상생활에 주는 의미. 한동안 청소하며 느낀 점들이다.

청소처럼 하찮은 일은 그 결과가 어찌 되었든 내 인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믿어버리는 것이 보통 사람의 일생이고, 청소일지라도 최선을 다한다면 겉만 닦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나의 내면과 정신이 닦여져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진다고 믿었던 것이 성현들이 보여준 불굴의 의지다.


#5부
긴 여정이 끝났다. 중간중간 곱씹으며 읽어보았다. 국가와 관련된 부분은 넘어갔지만 읽고 나서 다음날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단어들은 다시 찾아서 읽어보았다. 멋진 은유와 비유가 넘쳐나서 장편 시집을 읽은 느낌이다. 긍정보다 냉혹한 현실, 삶의 근본원리만 생각한 책이라 생각하겠다. 무념무상이란 말로 끝맺으며 편역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질문에 스스로 답해 본다.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짧게 배운 대로 숙제처럼 적어보면,
1) 죽음에 다가서기 위해 살고 있다.
2) 그가 가장 사랑한 고독과 권태를 위해 산다.
3) 진리 위에 존재하는 환상 속에 사는 삶
4) 이건 모르겠다. 세 가지를 종합하면 고독과 권태를 사랑하며 환상 속에 빠져 죽음을 맞이하며 산다고 해야 할까? 역시 세 질문에 답을 적고 보니 삶의 본질만 보게 되는 척박함이 느껴진다. 웃음과 대화가 없는 교감과 관계가 없는 삶이라 할까. 마치 어두운 극장에서 혼자 그림자 무언극 같은 느낌이다.

#처음읽는서양철학사
#안광복
이 책을 다 읽을 것 같진 않고. 이 중 쇼펜하우어 부분에서 이 철학가가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지 설명이 있고 그중 “부록과 보유”라는 책의 내용을 소개한다.

가로막는 장애가 없는 한, 강물은 조용히 흘러가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나 동물도 의지라는 장애물이 없다면 삶을 의식하지 않고 생명을 느끼지 않은 채 그냥 흘러갈 것이다. 우리가 무엇에 주목하고, 또 그것을 생각하는 까닭은 우리의 의지가 장애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중략) 건강할 때 우리는 몸에 대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구두가 작아 발을 죄면 그 아픔은 금방 느낀다. 또, 사업이 순조로울 때는 별 생 각이 없지만,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작은 일에도 신경이 쓰인다. 이처럼 편안함과 행복 은 우리에게 소극적이지만 괴로움은 적극적이다. (중략) 이를 분명하게 확인하고 싶다 면 남을 잡아먹는 동물의 쾌감과 남에게 잡아먹히는 동물의 불쾌감을 견주어 보면 될 것이다.


나는 “쇼팬하우어 아포리즘…”에서 이 내용을 찾아 옮겨본다. 3부에서 “나보다 비참한 자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에서 옮긴다.

강물은 바위 같은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는 한, 바다가 나타낼 때까지 조용히 흐른다. 인간과 동물의 수명은 강물과 같아서 살고자 하는 의지는 장애물이 나타나지 않는 한, 살아있다는 의식조차 갖추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를 본인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냥 무상한 세월만 흘러가는 것이다. (중략) 의지를 구속하는 어떤 충돌이 발생했을 때 의지는 비로소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낸다.
(중략)